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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마녀 재판 "세일럼 마녀 재판-군중심리의 위험성"

by 당근수박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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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 마녀 재판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일럼 마녀 재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TED의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세일럼 마녀 재판은 미국이 독립하기 전인 1692년에 발생한 일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매사추세츠주의 항구도시 세일럼에서 벌어졌고, 세일럼 빌리지와는 무관합니다.

이 잔혹한 사건으로 인해서 총 25명이라는 무고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요.

19명이 처형되고, 1명이 고문 중 압사, 5명이 옥사하게 됩니다.



세일럼 마녀 재판에 회부된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협의로 재판에 회부되게 됩니다.




만약 억울함을 주장하고 결백을 주장한다면 유죄를 선고받고 처형을 당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잡혀 오게 되고 자신은 풀려나게 됩니다.


이게 사실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은 실제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1692년 2월~1693년 5월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세일럼 마녀재판' 입니다.




청교도


이 사건은 초자연적인 것에 심취해 있는 일부 사람들에 의한 희생이었으며 잘못된 종교적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흑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청교도 이민


사건의 발단은 세일럼 마을의 성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일럼은 원래 영국의 탄압에서 도망친 청교도들이 1626년에 일으킨 마을입니다.

청교도들은 본토 영국의 기독교인들보다 종교에 더 심취한 신자였습니다.

그 당시 세일럼의 삶은 고립돼 있었고, 원주민과 프랑스 정착민과의 싸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삶은 고달팠으며 이웃끼리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692년은 가장 추운 겨울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 당시 새로 부임한 목사 새무얼 패리스의 딸인 베티 패리스와 조카 애비게일 윌리엄스가 발작과 이상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두 소녀의 치료를 맡았던 의사는 증상이 호전을 보이지 않자 2월 중순쯤에 "이게 다 마을에 숨어있는 마녀들 때문이다"는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청교도 인들은 마녀가 인간의 대리자를 통해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믿고 있었고,


마을에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이 나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상 증상도 늘어나게 됩니다


초기 기록에 "병에 걸렸다"라고 알려진 12명의 소녀는 몸의 비정상적인 뒤틀림, 발작 등의 증상을 보였으며, 피부가 따끔따끔한 통증을 호소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12명의 소녀 중 4명은 마을 사람 중에 3명의 사람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고발하게 됩니다.




고발당한 3명의 사람은 뭔가의 트집을 잡혀 "외부인"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연이어 투옥되게 됩니다.



어린 딸을 둔 가난한 임사부 사라굿은 마녀의 주술을 행한 혐의로 1692년 2월 29일 체포되고,




사라 오스본은 오랫동안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체포되었습니다.




베티 패리스의 집에 사는 노예 티투바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마귀의 명령으로 주술을 행했다고 자백했으며, 굿과 오스본이 자신에게 강요했다고 말하게 됩니다.




굿과 오스본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오스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옥사해 버립니다.




굿의 남편 윌리엄은 아내 굿을 두둔하기는커녕 


"그녀는 마녀이거나 곳 마녀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거짓 증언을 합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엄마와 함께 투옥된 도로시 굿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엄마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맙니다.




굿은 옥중에서 출산하지만 결국 태어난 아이도 죽어버리게 됩니다.




굿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죄 판결을 받게 되고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게 되며,


티투바는 5월까지 감금되었다가 석방되게 됩니다.




이후에도 거짓 고발에 의한 희생자는 계속해서 늘어났으며, 기록에는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하게 되고 고백하면 풀려난다"는 내용이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진실보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피고인이 고백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법원은 어떤 종류의 증거라도 다 받아들였습니다. 소위 영적 증거라는 근거 없는 증거를 포함해서



고발자의 대부분은 그들의 친척이었고, 이것이 객관성에 의심을 품게 했습니다.

마녀 재판에 의혹을 품고 사임한 나다니엘 살튼 스톨(Nathaniel Saltonstall)같은 판사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1963년 봄까지 100명 이상이 투옥되었으며, 14명의 여성과 6명의 남성이 처형되었습니다.

마녀 고발은 세일럼을 넘어 인근 마을까지 확산하게 됩니다.




이쯤 되자 마녀로 지목받는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프랜시스 데인 목사와 같은 성직자 조차도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내가 체포된 매사추세츠 총독 윌리엄 핍스가 "영적 증거"의 채용을 그만두도록 법원에 명함으로써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에게 생겨났던 이상한 증상들은 왜 나타난 것일까요?

일각에서는 "곰팡이에 의한 식중독이나 뇌종양에 의한 환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의 무차별적인 고발을 어른들이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현재에도 세일럼 마녀재판은 집단심리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심리의 위험성과 인간의 인식을 왜곡하는 공포심의 힘에 대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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